보이지 않는 질서에 대한 미장센   

 

   이지숙의 최근 작업은 대부분 도시의 재개발 현장과 관련되어 있다. 철거를 앞둔 장소에 형광 PVC 비닐을 설치하여 포착하는 <네온 무빙(Neon moving)>을 비롯하여, 모래를 운반하는 공사장의 거대한 트럭들이 이동하는 모습을 추적한 <트럭(Trucks)> 연작, 재개발 현장에 남아있는 풀들을 찍은 <의심스러운 여러 가지(A lot of suspicious things)>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작업들의 단초가 된 것은 2013년 돈의문 일대에서 이루어진 설치 작업이었다. 당시 이지숙은 대규모 뉴타운 건설을 위해 철거를 앞두고 폐허로 변해가고 있는 주거 단지에 형광색 비닐을 설치하여 촬영하는 작업을 시도했다. 작가 스스로 현장 설치를 통해서 특정한 상황을 연출하여 카메라로 포착한다는 점에서, 이 작업은 장소에 대한 객관적 기록이 아니라 장소에 대한 좀더 적극적인 개입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장소의 문맥을 주관적으로 전도시키려는 연출가적 의도라기보다, 작가가 감지하지만 보이지 않는 질서를 시각화하는 미장센(Mise-en-Scène)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 그는 도처에 있는 재개발 지역들의 변화와 가족의 죽음을 함께 경험하면서, 삶의 한 단계가 죽음의 국면을 향해 가면서 마지막 에너지를 발산하는 것과 같은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이러한 경험은 도시의 재개발에 대한 그만의 관점을 형성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전시에 보여지는 <네온 무빙>(2018) 역시 곧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되기 위해 사라지게 될 수색과 증산동의 주거지 일대를 대상으로 한 것이다. 철거를 앞두고 있는 주택가에 설치한 형광색 비닐은 여러 가지 함의를 지닌다. 그것은 투명성 때문에 공간을 물리적으로 완전히 잠식하지 못하지만, 형광색의 강한 시각효과로 분명한 물질감을 전함으로써 장소에 가볍게 간섭한다. 흡사 흐르는 듯한 액체 상태가 막 고체화되는 단계에 놓인 것처럼 보이는 특수한 질감으로 인해, 그것은 존재감을 느낄 수는 있지만 명료하게 언어화하기는 어려운 실체에 대한 효과적인 표상이 될 수도 있다. 이 비닐은 인간들이 살아갔던 삶의 현장이 남겨놓은 유기적인 잔해들로 보이는 동시에, 인공물로서의 속성을 전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작가가 추구하는 미장센이 자연적 세계와 인공적 세계 간의 상호관계와 관련되어 있음을 암시하기도 한다. 무엇보다 그것은 버려진 물체라는 처량한 운명에 처한 듯하면서도 스러져가는 주변 환경에 저항하는 힘을 응집한 것처럼 느끼게 함으로써, 철거 현장을 아직 완결되지 않은 잠재적 사건의 무대로서 인식시킨다. 

    비닐 구조물이 놓여진 무대가 암시하는 잠재적 사건들은 도시 재개발 현장을 통해 이지숙이 바라보고자 하는 거대하고 불가역적인 사이클(Cycle)과 관련되어 있다. 눈앞의 대상 자체가 아니라 그것이 놓여있는 사이클에 대한 그의 관심은 평범한 풍경을 촬영하여 반전시킨 <오드라덱(Odradek)>(2015)이나 <네온 워터(Neon water)>(2016)와 같은 영상작업들에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 작업들에서 이지숙은 네가티브와 포지티브의 색감을 포토샵으로 반전시키는 효과를 통해서, 일상풍경을 그 저변에 도사리는 잠재적인 세계의 풍경으로 전도시켰다. <오드라덱>에서 반전된 상태의 숲은 불에 타버린 잔해와 같은 이미지로 구현되는데, 숲이 지닌 애초의 생기가 강할수록 반전상태의 폐허의 느낌은 더 강력해진다. 시청 광장의 분수대를 찍어서 반전시킨 <네온 워터>에서 평범한 분수의 물줄기는 지하에 매장된 원유를 내뿜는 것처럼 보임으로써, 자연의 힘에 저항하는 도시의 일상과 정면으로 배치되는 반대급부적이고 파괴적이며 야생적인 힘을 암시한다. 그러나 여전히 그 정체를 선명하게 알아볼 수 있는 익숙한 도시 풍경의 실루엣은 이 장면들을 저변에 축적된 에너지가 포화상태에 놓인 채, 현실 영역에 침범할 듯한 아슬아슬한 경계지점으로 느끼게 만든다. 그것은 잠재된 것들에 의해서 가시적 현실의 장이 무력화되기 직전의 긴장 상태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드러난 것과 잠재된 것 사이의 역학관계를 암시하는 이러한 작업들은 이지숙이 도시 환경을 미시적인 도시 개발의 논리의 범주를 벗어나는 거대 질서의 일부로서 파악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시각은 그가 포착해온 대규모 바위산 연작에서도 드러난다. 인공적 건축물을 짓는 과정에서 노출되는 거친 바위들은 일상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규격화된 도시 개발의 단계들을 단번에 뛰어넘는 절대적인 풍경을 형성하면서, 흡사 거대 자연 앞에 서있을 때의 숭고와도 같은 감정을 느끼게 한다. 이러한 감정은 이 장면을 인공과 자연, 생산적인 것과 파괴적인 것이라는 이분화 된 논리의 장 안에 위치시키기 어렵게 하며, 도시 개발의 현장마저도 반복되는 거대한 사이클의 일부로 인식하게 만든다. 이지숙이 지속적으로 도시의 공사 현장에 천착하는 이유는 인공적인 산물조차도 자연의 거대한 생성과 소멸의 사이클 속에 위치할 수밖에 없음을 자각하게 하는 어마어마한 에너지의 폭발 상태를 체험함으로써, 그 안에서 피상적인 경계들이 사라지고 보다 근원적인 실체가 드러날 수 있음을 인식했기 때문일 것이다. 

    “의심스러운 여러 가지”라는 이번 전시의 제목은 여전히 알 수 없으나 그를 매료시키는 그 실체적 진실을 탐색하는 자로서의 태도를 드러내고 있다. 그의 카메라는 공사장에서 끊임없이 흙더미를 실어 나르는 트럭의 경로를 따라 가며, 자동차 헤드라이트에 의해 모습이 드러났다가 사라지곤 하는 공사장 천막 옆의 풀들을 포착하기도 한다. 트럭들의 끊임없는 이주의 장면들은 개발 현장에서 나온 잔여 흙들이 다른 현장으로 이동하여 새로운 땅의 터전이 되어가는 사이클을 드러내는 파편적 단서들이 된다. 한 때는 번듯한 정원의 일부였으나 이제는 야생적 잡초가 되어있는 공사장 옆 풀들의 움직임은 끊임없이 변화되는 도시 생태의 사이클 속에서 곧 사라져 갈 존재들의 운명을 생각하게 한다. 이지숙은 도시 개발의 이면에 숨겨진 이러한 장면들을 포착함으로써, 번쩍이는 도시의 외관 역시 언젠가는 그 운명을 다한 채 소멸을 향해 갈 것임을 말하고 있다. 소멸에 관한 이런 이야기가 폐허에 관한 향수에 그치지 않는 단호함을 갖는 것은 소멸 역시 새로운 사이클의 시작이 되는 근저의 질서를 찾으려는 그의 태도 때문일 것이다.

              

이은주 (독립기획자, 미술사가)

Eunju Lee (Independent curator, art historian)

© 2017 by LEE JISOO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