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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의 기억, 그 미정(未定)의 순간들

이문정(조형예술학 박사, 중앙대학교 겸임교수)

 

 

   집이 보인다. 길이 보인다. 그리고 그 위에 서 있는 사람들의 흐릿한 실루엣(silhouette)이 보인다. 지극히 평범한 일상의 풍경이다. 달이 뜬 어둑한 밤인가 보다. 그러고 보니 해가 떠 눈이 부신 한낮인 것도 같다. 시간의 흐름이 모호해지는 순간 일상의 풍경은 몽환적인 초현실의 풍경으로 전환된다. 알 수 없는 풍경들이 물처럼 흐르고 흐른다. 시간이 지층처럼 쌓이고 쌓인다.

이지숙은 자신의 작업을 ‘기억하기 위한 작은 시도’라 정의한다. 작가는 스스로 강박적이라 느낄 만큼 자신을 둘러싼 일상의 풍경들을 촬영하는데 이것은 찰나의 순간도 놓치지 않기 위한 노력이다. 일반적으로 일상은 사소하고 진부한 순간들이 반복되는 중요하지 않은 세계로 여겨진다. 그러나 이지숙에게 일상은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쉽게 정의내릴 수 없고 쉽게 정의 내려서도 안 되는 소중한 시간들이다. 작가는 일상의 하루하루가 우리의 삶을 이루며 그 속에서 우리는 우리 자신의 존재를 확인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리고 아무리 무의미해 보이는 일상이라고 해도 누가, 언제, 어떻게 보는가에 따라 그 의미가 달라진다고 믿기에 그것을 촬영한다.

일상을 기억하려는 노력은 돈의문, 녹번동, 응암동 주변의 재개발 지역들을 촬영하면서부터 시작되었다. 그 곳은 작가가 어려서부터 거닐었던 낯익은 동네이자 아버지와의 추억이 담겨 있는 장소이다. 그러나 그 기억의 장소들은 하나 둘 허물어질 것이다. 집들은 누군가의 흐릿한 기억 속에만 남게 될 것이고 시간이 흐르면 그 기억마저 사라질 것이다. 흐르는 시간과 사라지는 존재들, 흐려지는 기억과 흔적들은 허무함이나 슬픔 같은 한 두 개의 단어로는 설명할 수 없는 복잡다단한 감정의 변화를 불러일으킨다. 이지숙이 변화를 거부하거나 영원성을 추구하는 것은 아니다. 작가를 포함한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모든 것은 변한다. 고정된 것은 없다. 그 모두를 붙잡을 수 없다는 사실을 작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그렇기에 이지숙은 더욱 일상의 촬영에 몰두한다.

자신이 촬영한 풍경들이 기계적인 기록이 아니라 기억으로서 존재하도록 만들기 위해 이지숙은 이미지(image)를 역전시킨다. <녹번동>(2013), <Silhouette>(2014), <Night Light>(2015), <Night of a Palace>(2015) 등을 비롯한 이지숙의 작품 대부분은 네거티브 이미지(negative image)로 구성되며 그것은 낮을 밤처럼, 밤을 낮처럼 전환시키고 시간을 초월한다. 작가에게 기억은 언제나 시간을 넘어서는 것이다. 네거티브 이미지는 그 동안 쉽게 보이던 것을 보이지 않게 한다. 반대로 그 동안 잘 보이지 않던 것을 더 잘 보이게 한다. 동시에 그것은 이미지가 역전되듯 무의미하다고 여겨진 풍경들이 유의미한 것으로 전환되길 바라는 작가의 순수한 바람을 담은 것이기도 하다.

사실 낮과 밤은 그렇게 다른 것이 아니다. 낮은 곧 밤이 되고 밤은 곧 낮이 된다. 무의미함과 유의미함도 절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은 언제든지 역전될 수 있고 바뀔 수 있는 상대적인 것이다. 모든 것은 물처럼 흐르고 흐른다. 그리고 이 흐름을 강조하기 위해 작가는 의도적으로 움직이는 영상을 캡처(capture)한 이미지를 통해 흐르는 이미지를 보여준다. 또한 캡처된 사진은 동영상일 때에는 미처 보지 못했던 부분들을 관찰하고 경험하고 느낄 수 있게 하는데, 이것은 마치 이미지가 역전됨으로써 그 동안 보지 못했던 것들을 보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한편 <Neon Puddle> 시리즈(2013-2014)와 <Neon Falls>(2013)에는 네온(neon) 웅덩이와 네온 폭포가 등장해 시선을 끈다. 무채색의 풍경 위로 쏟아져 내리는 네온 폭포와 웅덩이, 상처를 가려주는 것 같은 네온 커튼은 흘러가는 일상을 더욱 강조한다. 네온 폭포와 웅덩이에서 연상되는 물은 그 자체로 이동과 순환, 재생의 의미를 담아내 시간의 흐름을 함유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물은 시작점이자 종착지이다. 삶이자 죽음이다. 물은 우리의 일상과 닮아 있다.

일상성을 중요시하는 작가는 작업을 위한 주된 매체로 스마트폰(smart phone)을 선택했다. 이번에 전시되는 모든 이미지들은 아이폰(iPhone)으로 촬영, 편집, 완성되었다. 그것은 작가가 원하면 언제든 쉽게 사용할 수 있는 매우 실용적인 장비이다. 스마트폰은 일상에서 작가와 늘 함께하는 필수용품이며 촬영 기구이자 편집 도구이다. 스마트폰의 기본 카메라로 촬영된 이미지들은 어플리케이션(application)을 통해 완성된다. 스마트폰은 의미론적으로도 중요하다. 그것은 현재의 일상을 대표하는 상징이며 현대인들에게 중요한 의미를 갖는 삶의 일부이다. 또한 작가는 스마트폰에서 부서지기를 기다리는 재개발 지역의 모습을 발견하기도 한다. 재개발 지역의 건축들은 허물어도 된다는 허가를 받은 버려진 것이지만 과거의 어느 순간 그것은 누군가의 일상에서 가장 중요한 장소이자 소중한 공간이었을 것이다. 재개발 건물이 새 것에서 폐기물로 변했듯이 스마트폰도 곧 버려질 것이다. 기억에서 지워질 것이다. 그리고 스마트폰이 버려지면서 그 안에 기록된 기억들도 사라질 것이다. 이는 누보 레알리즘(Nouveau Réalisme) 작가들이 압축된 자동차, 고철, 쓰레기 등에서 현대의 모습을 발견한 것과 같은 맥락이기도 하다.

  작가는 전시 형태에서도 일상성을 최대한 강조한다. 작품의 프레임(frame)은 일상용품을 담는 마분지 상자로 만들어졌으며 그 형태는 마치 네온 폭포가 그렇듯, 아니면 우리가 지나치는 옛 동네의 길거리가 그렇듯 울퉁불퉁하여 구겨진 것 같은 모습이다. 시간이 흐르면 빳빳하던 새 것도 낡고, 휘어지고, 부서진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기 때문이다.

우리의 곁을 스쳐 지나가는 일상에 대한 이지숙의 탐구는 그림자에 주목하는 작업들로 이어진다. 그림자는 일련의 비디오 아트(video art) 작업들에서 두드러지며 응암동 재개발 지역에서, 녹번동 횡단보도 앞에서, 작가의 동네 어귀에서 등장한다. 그런데 영상 속의 그림자는 작가를 비롯한 우리들을 암시한다. 그림자는 어디엔가 존재할 그림자의 주인-주체-을 전제하기 때문이다.

그림자 연작 중 <오드라덱 Odradek>(2015)은 작가가 자신의 그림자를 따라가며 촬영한 것이다. 사진 작업이 그렇듯 이미지가 역전되어 그림자는 하얀 덩어리로 반전되고 그 스스로 존재하는 주체로 변신한다. 현실 속에서 그림자는 주인공이 아니다. 그것은 항상 잘 안 보이는 것, 뒷면, 주목받지 않는 것, 그리고 실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이런 그림자가 주인이 되고 주체가 된다. 사실 그림자는 카프카(Franz Kafka)의 『가장의 근심 Die Sorge des Hausvaters』(1917)에 등장하는 오드라덱이 그렇듯 정확한 형태를 찾을 수 없고 언제나 움직이며 잡을 수도 없다. 불완전하고 불확정적이며 다의적이고 모호한 존재인 그것은 엉켜있는 실몽당이처럼 미로(迷路)로 나타나는 수수께끼와 같다. 그런데 이러한 미정성(未定性)은 역으로 무한한 가능성을 함유한다. 그림자-오드라덱-는 인지 가능하지만 그것의 본질을 한정지을 수 없는 열린 존재이다. 그것은 고정되고 정지된 의미를 해체하고 다의적이고 지속적인 흐름을 강조한다. 불확정성은 변화와 생성을 창조하는 원동력이 된다.

이즈음에서 우리는 그림자-그리고 오드라덱-를 기억과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을 것이다. 그림자가 그림자의 주인과 분리될 수 없듯이 기억도 그 기억의 주체와 분리될 수 없다. 그림자가 불확정적이듯 기억도 가변적이다. 동일한 사건도 떠올릴 때마다 조금씩 다른 기억으로 재생된다. 그것은 사라지고 나타나기를 반복한다. 그림자를 붙잡을 수 없는 것처럼 기억도 붙잡을 수 없다. 그것은 계속 변화하고 흐른다.

   이제 일상에 대한 작가의 애정과 탐구는 인간 존재 자체에 대한 근원적인 물음으로 확장된다. 그것은 필연적인 결과이다. 그러나 그의 작품 속 이미지들이 그렇듯 아직 그 물음의 답은 불확정적이다. 기억이 그렇듯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계의 모든 존재들은 정지하거나 종결되지 않는다. 그것은 오히려 끝없는 흐름 속에 놓여 지속성과 유동성을 띤다. 그렇기에 이지숙이 향하는 탐구의 여정은 결코 쉬운 길이 아니다. 영원히 끝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무 것도 정해진 것은 없다. 흐르는 것에 완결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하다. 그것은 바로 이지숙의 작품을 만난 관람객이 그들만의 일상으로 돌아가면 이전과는 사뭇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둘러싼 풍경을 바라보게 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소소한 일상을 기억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그 속에서 자연스럽게 세계 속 존재의 의미를 끝없이 질문하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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